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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8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8) - 절구질하는 여인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8) - 절구질하는 여인 조용한 뒷모습에서 시작된 이야기박수근의 그림 속 여인들은 대부분 허리를 굽힌 자세로 등장한다.절구를 찧거나, 빨래를 하거나, 아이를 업고 무언가를 해내는 여성들.〈절구질하는 여인〉 역시 그렇다.하지만 이 그림은 단순한 노동의 장면이 아니다.박수근에게 이 여인은 단지 ‘누군가’가 아닌바로 그의 아내, 김복순 여사였다.화가의 붓끝에 담긴 그 뒷모습에는고단한 일상의 무게와 그 무게를 견디는 사랑의 깊이가 함께 묻어 있다. 함께 살아낸 날들, 함께 그려진 삶1940년, 박수근은 김복순 여사와 결혼한다.그들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박수근은 작품에 몰두했고,김복순 여사는 때로는 몇 시간씩 모델이 되어주며..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7) - 세 사람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7) - 세 사람 고요한 풍경, 그러나 비어 있지 않은박수근의 1959년작 《세 사람》은 길거리에 모여 앉아 있는 세 명의 노인을 그린 작품이다.배경은 단조롭고, 인물은 윤곽만을 남긴 채 거의 형체처럼 화면에 앉아 있다.세 사람은 말이 없고, 서로를 보지도 않으며,각자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그러나 그들 사이엔 어떤 질서 같은 것이 흐른다.마치 오래 함께한 사이에만 가능한 침묵, 그런 조용한 균형이 있다.박수근은 이 그림을 수채로 그렸다.화면은 은은하고 투명하게 채색되어 있지만,그 색이 인물 위로 투박하게 번지며오히려 이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흐릿한 실루엣을 더 강조한다.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시간그림 속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그저 앉아 있다.노동을..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6) - 창신동 기와집, 창신동 풍경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6) - 창신동 기와집, 창신동 풍경 삶이 머문 자리, 창신동박수근은 전쟁 직후 서울 창신동에 정착했다.1952년부터 1964년까지, 그는 창신동의 작은 기와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화가로서의 삶을 이어갔다.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 번 돈으로 마련한 집이었다.창신동은 서울 도심에 있으면서도골목이 많고, 지형이 기복져 ‘달동네’처럼 언덕 위에 집들이 층층이 얹힌 동네였다.기와지붕 사이로 좁은 계단이 이어지고, 마당에 놓인 장독대와 빨래줄,돌담에 기대어 앉은 사람들. 그곳은 화려하진 않지만, 누군가가 분명 살아가고 있는 자리였다.박수근에게 창신동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사람의 냄새와 삶의 무게가 깃든 삶의 풍경이었다.《창신동 기와집》 – 조용한 집의 무게1956년..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5) - 교회가 보이는 마을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5) - 교회가 보이는 마을 교회가 있는 풍경박수근의 《교회당이 보이는 풍경》(1957)은연필로 그린 조용한 마을의 장면이다.언덕 위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교회당,화려하지 않은 이 그림은,오히려 박수근이 평소 그려오던 ‘사람의 그림’보다더 깊은 감정을 끌어올린다.이 풍경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을 같고,또는 이미 떠나간 사람을 마음에 품은 공간 같기도 하다. 잊히지 않는 장면우리 외할머니는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낳으셨다.엄마는 둘째이자 외동딸이었고,나는 그런 엄마의 외동딸이었다.우리 외갓집은 진짜 시골이었다.시외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택시로 고개를 하나 넘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집집마다 굴뚝이 있었고, 길은 흙길이었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어느 추석, 외갓..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4) - 시장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4) - 시장– 시장, 앉은 사람들 사이로 흐르는 시간 시장이라는 이름의 쉼터박수근의 《시장》은 떠들썩하지 않다.장날의 소란, 물건을 고르는 손길, 흥정하는 소리도 없다.그의 시장은 조용하다. 그림 속 다섯 사람은 모두 앉아 있다.누군가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누군가는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듯하다.장을 보는 풍경이 아니다.오히려 장을 다 보고 나서 잠깐, 허리를 펴고 마음을 푸는 시간이다.시장이라기보다, 시장 한켠의 쉼터 같은 장면이다.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이 그림이 말하는 건 ‘거래’가 아니라 ‘공존’ 인듯 하다.말은 없어도 함께 있는 사람들이 주는 묘한 온기.그림 속 인물들은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고, 몸은 서로 향하고 있지만시선은 각자의 어딘가..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3) - 유동(遊童)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3) - 유동(遊童) 말보다 오래 남는 순간들박수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를 말하기보다 오래 지켜보게 된다.그림 속 인물들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그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그저 조용히 누군가 곁에 앉아 있다.《유동》(遊童, Playing Children)은 그런 그림이다.네 명의 아이들이 땅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누구는 무릎을 세우고 있는 것 같고, 누구는 등을 살짝 굽히고 앉아 있다.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그 자세들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하다.어떤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크게 웃는 것도 아니지만,그들 사이엔 작고 단단한 유대가 흐른다. 아이들과 흙, 그리고 햇살박수근의 화면은 항상 ‘흙빛’이다.마티에르 기법으로 만들어진 두툼한 질감의 배경 위에아이들의 옷은 ..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2) - 나무와 두 여인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2) - 나무와 두 여인 전후 한국의 삶을 담다1회차에서 언급했지만, 박수근(1914–1965)은 6·25전쟁 이후 피폐한 현실 속에서,화려한 풍경이나 위대한 영웅이 아닌 ‘살아내는 사람들’을 그렸다.그의 작품에는 일상의 고단함이 담겼지만, 결코 침울하거나 비참하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는 그 삶 속에서 꾸준한 존엄과 따뜻함을 보았기 때문이다.나무와 두 여인 이 작품은 1950년대 전후, 박수근이 대표적 도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나무와 여성이라는 조합 속에서,전후 한국인의 삶과 회복의 정서를 담아냈다. 넓은 캔버스 위에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화면을 절반 가로지르고,그 아래 두 여인이 배치되어 있다.한 명은 머리에 짐을 이고 있고,다른 한 명은 아이를 업고 있다.행동보다는 ..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1) - 빨래터

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1) - 빨래터 흙빛의 화가, 박수근 박수근(1914–1965).그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건 화려한 색채나 거대한 풍경이 아니다.오히려 돌담 아래 굽은 허리로 장터를 걷는 여인, 아이를 업은 어머니,그리고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아주머니들이다. 박수근은 말한다.“나는 인간을 그리고 싶었다.” 그의 ‘인간’은 영웅이 아니었다.삶의 가장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박수근은 그런 사람들에게 화가가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존엄을 안겼다. 6·25 전쟁 후 피폐해진 조국의 현실에서, 화려한 신화를 말하지 않고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그의 그림 속 인물은 이름이 없지만,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그들의 허리, 손끝, 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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