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5) - 교회가 보이는 마을
교회가 있는 풍경
박수근의 《교회당이 보이는 풍경》(1957)은
연필로 그린 조용한 마을의 장면이다.
언덕 위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교회당,
화려하지 않은 이 그림은,
오히려 박수근이 평소 그려오던 ‘사람의 그림’보다
더 깊은 감정을 끌어올린다.
이 풍경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을 같고,
또는 이미 떠나간 사람을 마음에 품은 공간 같기도 하다.
잊히지 않는 장면
우리 외할머니는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낳으셨다.
엄마는 둘째이자 외동딸이었고,
나는 그런 엄마의 외동딸이었다.
우리 외갓집은 진짜 시골이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택시로 고개를 하나 넘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집집마다 굴뚝이 있었고, 길은 흙길이었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어느 추석, 외갓집에서 지내고 돌아오는 날.
외할머니는 교회를 가신다고 하셨다.
우리와 같은 방향이니 교회 차량을 함께 타기로 했다.
그 버스는 어르신들을 태우러 다니는 교회 봉고차였고,
교회는 터미널 근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우리는 터미널 쪽으로 걷고,
외할머니는 언덕 위 예배당을 향해 천천히 걸어 올라가셨다.
그리고 예배당 옆 큰 나무 아래, 외할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우리 쪽을 향해 한참을 서 계셨다.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손을 들어 우리에게 "잘 가"라고 손짓하시던 모습.
나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었지만, 언덕 위 그 교회,
예배당 옆의 나무, 작고 굽은 어깨로 손을 흔들던 외할머니의 모습은
아직도 내 마음에 선명하다.
(아... 눈물 난다...)
나의 신앙, 나의 뿌리
외할머니도, 엄마도, 나도 모두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다.
삶이 쉽지 않았던 순간들,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결국 내가 믿는 하나님,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돌이켜 보면 내 신앙의 시작은 내게 말씀을 가르쳐준 이들보다도
그저 나를 위해 말없이 손을 모으던 사람들,
즉 엄마와 외할머니로부터였다.
그분들은 거창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살아가는 모습 자체로 나에게 신앙을 보여주셨다.
시장 골목을 걷던 엄마의 손,
언덕 위에서 조용히 손을 흔들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내 신앙의 풍경 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계신 것 같다.
그림이 내게 속삭인 말
“하늘을 바라보며 걷던 이들이 있었다.
너는 그 길을 이어가는 중이야.”
박수근의 《교회가 보이는 마을 풍경》은
누군가의 기도가 깃든 언덕,
조용한 발걸음이 모인 마을,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나무 아래에서
지금도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곳에서, 외할머니와 엄마의 손을 다시 떠올리고,
그 손이 이끌어준 길 위를 오늘도 조용히, 묵묵히 걸어간다.
📌 참고 링크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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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mmca.go.kr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232875
미술로 생명의 말씀 전한 200여명 작품 한자리에… 한국기독교미술 50년展
‘지팡이를 들고 모자를 쓴 사내가 계단에 걸터앉아 있다. 멀리 언덕 위로 교회가 사내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길 에는 아낙네가 두엇 걸어간다.’ 한국의 대표
ww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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