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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마티스 13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에필로그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에필로그 가끔은 색 하나가, 선 하나가,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조용하게 울릴 때가 있습니다.앙리 마티스의 그림은 저에게 그런 울림을 주었습니다.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을 따라, 한 걸음씩,제 마음의 색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처음 시작할 때,저는 조금 지쳐 있었고(아니, 요즘 계속 지쳐 있습니다),일상이라는 반복 속에서 묵묵히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무언가가 사라진 것 같은 나날들.그때 마주한 것이 마티스의 그림들 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때론 거칠었고, 형태는 단순했으며,때로는 너무 화려해서 현실감이 없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색채는 저를 현실로 다시 끌어당겼습니다.눈앞의 장면이 아니라, 제 안의 감정이 색으로 번역되는 것..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13), 샤펠 로자이르 드 뱅스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13), 샤펠 로자이르 드 뱅스 병든 예술가의 마지막 선택1948년, 마티스는 이미 관절염과 병색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운 상태였다.붓을 제대로 쥐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그는 오히려 누구보다 거대한 작업에 뛰어든다.프랑스 남부 뱅스(Vence)에 위치한 작은 수녀원 예배당,〈샤펠 로자이르 드 뱅스(Chapelle du Rosaire de Vence)〉.그는 이 성스러운 공간을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삼는다.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 제의복, 제단까지 모두 마티스의 손을 거쳤다. 모두가 말릴 때,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주변 사람들은 걱정했다.“지금 당신의 몸 상태로는 무리예요.”하지만 마티스는 담담히 말했다. “이건 나의 마지막 작품이다.내가 살아온 모든 ..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12), 왕의 슬픔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12), 왕의 슬픔 인생의 끝자락에서,사람은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모든 걸 가졌던 사람도, 모든 걸 잃은 사람도그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마티스의 작품 〈왕의 슬픔 (La Tristesse du Roi, 1952)〉은그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2년 전에 남긴색과 선, 감정과 고요의 대작이다. 붓을 놓고, 가위를 든 예술가이전 회차에서도 언급했지만 젊은 시절 법률을 공부하던 마티스는맹장 수술 후 병상에 누워 있을 때,어머니가 가져다 준 그림 도구를 통해 처음 미술을 접했다.그 한순간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고,그는 다시는 붓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말년에 그는 지독한 관절염으로 더 이상 붓조차 쥘 수 없게 되었다.그는 침대에 누운 채, 조..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11), 루마니아 풍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11), 루마니아 풍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 가끔, 그림 속 한 사람이 말을 건네올 때가 있다.이번에 마주한 앙리 마티스의 〈루마니아 풍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은말 없이, 그러나 분명히 무언가를 건넨다.화려하지만 고요하고, 낯설지만 어딘지 익숙한 시선으로.이 작품은 1940년, 마티스가 전쟁의 긴장 속에서도그림이라는 안식처에서 꺼내 놓은 또 하나의 ‘평온한 초상’이다. 얼굴보다 먼저 다가오는 옷의 문양이 그림에서 여인의 이목구비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입체감이 사라진 얼굴은 단순하고 평면적이다.마티스는 이처럼 인물의 감정이나 사실성을 과감히 생략하고,대신 색채의 배열과 옷의 문양에 집중했다.특히 눈길을 끄는 건 흰색 블라우스 위에 그려진 곡선의 무늬.이 패턴은 단..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10), 삶의 기쁨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10), 삶의 기쁨 “정신 노동자를 위한 안락의자”에서 시작된 꿈앙리 마티스는 말했다.“내가 꿈꾸는 미술이란 정신 노동자들이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편안하게 머리를 누일 수 있는 안락의자 같은 작품이다.” 이 말이 몸소 이루어진 그림이 바로 《삶의 기쁨(Le Bonheur de Vivre, 1905–06)》이다.야수파 시절의 폭발적인 색(붉은 짐승 같은 붓질)은 이 작품에서 한결 부드러워졌고,그 결과 ‘풍경 속 인물들의 휴식과 편안함’이 색 한 장면으로 재탄생했다. 보들레르 시에서 영감받은 무한한 초대이 그림의 밑그림엔 샤를 보들레르의 시 ‘여행으로의 초대(L’Invitation à un Voyage)’가 있다.시인은 "천국 같은 낙원으로의 여행"을 노래했는데,마티..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9), 모자를 쓴 여인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9), 모자를 쓴 여인 한 인물을 그린 초상화에 이토록 많은 색이 쓰일 수 있다는 것을마티스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그리고 그 색들 사이에서 마티스가 숨기지 않고 드러낸 감정,그 솔직함이 나를 오래도록 사로잡았다.〈모자를 쓴 여인(Woman with a Hat)〉은마티스의 아내, 아멜리 마티스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1905년, 야수파(Fauvism)가 등장한 바로 그 해에 발표된 이 그림은마티스를 세상에 알린 대표작이자,그의 예술 세계가 본격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붓을 따라 튄 감정, 얼굴 위의 색들이 그림은 마치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작업처럼 보인다.하지만 바로 그 ‘미완성’처럼 보이는 붓질 속에서마티스는 새로운 그림 언어를 찾아냈다.전통적인 ..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8), 이카루스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8), 이카루스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늘을 날고 싶어 한다.가볍게, 자유롭게, 더 멀리.그 바람은 때론 꿈을 만들고,때론 현실이라는 땅으로 추락하게 만든다.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Icarus, 1947)》는날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과 그 끝에 찾아온 무게를색 하나, 선 하나로 정직하게 마주한 그림이다. 붓 대신 가위, 병든 손으로 완성한 자유말년에 마티스는 지독한 관절염으로 고통받았다.손에 붓을 쥐는 일조차 힘겨워지자그는 손에 붓을 묶어가며 그림을 그렸고,나중에는 아예 붓을 내려놓고색종이를 자르고 붙이는 ‘컷아웃’ 작업에 몰두했다.“가위는 연필보다 더 감각적이다.”마티스는 종이를 자르는 감각에서오히려 더 자유롭고 본질적인 예술의 움직임을 느꼈다.그는 이 종이 오리기..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7), 창문을 통해 본 니스의 정원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7), 창문을 통해 본 니스의 정원 나는 지금 커다란 통창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시원하게 열린 창 너머로 붉게 물든 노을이 신도시의 빌딩 사이로 번져 나가고,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과저마다의 퇴근길이 창 아래로 펼쳐진다.이 풍경이 익숙해졌지만,어느 순간 문득, 창문조차 열 수 없던 시절의 내가 떠오를 때가 있다.반지하 원룸에서 살던 시절,작고 뿌연 창이 벽 한 칸에 붙어 있었다.열어도 환기만 될 뿐,그 어디로도 시선이 가지 않았다.나는 그때 늘 ‘창문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밖을 바라보고 싶었고, 햇살이 드는 벽을 원했고,세상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그래서일까.마티스의 〈창문을 통해 본 니스의 정원(Open Window, Colliour..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6), 달팽이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6), 달팽이 마티스의 그림 인생은오려낸 종이 위에 마지막 숨을 불어넣으며 완성되었다.〈달팽이(The Snail, 1953)〉는 그런 점에서그의 유작이라 불릴 만큼,생의 끝자락에서 우리에게 남긴 가장 순수한 ‘색의 유서’ 같은 작품이다. 나선 위를 천천히, 색은 흐르고정사각형 캔버스 위에 색색의 종잇조각들이 나선형을 따라한 칸씩 돌아가며 자리하고 있다.주황, 파랑, 초록, 보라, 검정…그 배열은 불규칙하지만 질서가 있고,긴박하지만 여백이 있다.마티스는 실제 달팽이를 오랫동안 관찰하며그 모양의 흐름을 색으로 재구성했다고 한다.달팽이 껍질의 휘어진 리듬을 따라색은 천천히 돌고 멈추고, 다시 움직인다.멈춤과 이동이 반복되는 이 패턴은마치 우리 삶을 닮아 있다.바쁘게 걷..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5), 푸른 누드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5), 푸른 누드 푸른색이라는 하나의 색 안에이토록 다른 감정과 시간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나는 앙리 마티스의 두 ‘푸른 누드’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하나는 1907년에 그린 유화,다른 하나는 1952년, 말년의 침대 위에서 오려낸 종이 조각.사이엔 45년의 시간이 흐르고,화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몸’이라는 주제를 다시 바라본다.1907년, 비스크라의 기억〈푸른 누드 혹은 비스크라의 기억〉은마티스가 야수파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유달리 큼직하고 강렬한 여성의 누드가푸른 음영 속에서 선명히 드러난다.상체는 정면에서 본 듯하고, 하체는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 구조.하나의 시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구도는,마치 감정이 여러 방향으로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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