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 너머의 삶, 박수근을 따라 걷다 (4) - 시장
– 시장, 앉은 사람들 사이로 흐르는 시간
시장이라는 이름의 쉼터
박수근의 《시장》은 떠들썩하지 않다.
장날의 소란, 물건을 고르는 손길, 흥정하는 소리도 없다.
그의 시장은 조용하다.
그림 속 다섯 사람은 모두 앉아 있다.
누군가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누군가는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듯하다.
장을 보는 풍경이 아니다.
오히려 장을 다 보고 나서 잠깐, 허리를 펴고 마음을 푸는 시간이다.
시장이라기보다, 시장 한켠의 쉼터 같은 장면이다.
함께 앉아 있다는 것
이 그림이 말하는 건 ‘거래’가 아니라 ‘공존’ 인듯 하다.
말은 없어도 함께 있는 사람들이 주는 묘한 온기.
그림 속 인물들은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고, 몸은 서로 향하고 있지만
시선은 각자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엔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연결이 있다.
마치 오랜 친구들이 함께 앉아 있는 것처럼,
굳이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거리감.
함께 앉아 있기만 해도 충분한 관계.
나의 시장, 나의 기억
나는 어릴 적부터 서울 근교의 소도시에 살았다.
농부도 없었고, 흙길도 없었지만 시장만큼은 늘 가까이 있었다.
엄마는 자주 나를 시장에 데리고 가셨다.
장을 보고 나면, 꼭 떡볶이나 잔치국수를 사주셨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아서 엄마가 장보러 간다고 하면 신나게 따라 나섰다.
하지만 장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엄마, 언제 끝나?”
“이제 그만 사자!”
하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알 것 같다.
가장 따뜻한 풍경.
그게 나의 ‘시장’이었다.
이젠 엄마와 시장을 함께 걷기 어렵지만
엄마는 이제 많이 연로하셨다.
오래 걷는 것도 힘들고, 울퉁불퉁한 재래시장 바닥을 걷는 것도 부담스러워하신다.
우리는 이제 대형마트에서 함께 장을 본다.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바닥이 반들반들한 넓고 쾌적한 곳에서.
편하긴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다시 엄마와 시장에 가고 싶다.
잔치국수 냄새가 나는 그 골목,
수건을 머리에 두른 상인 아줌마들,
바닥에 앉아 나물을 다듬던 그 사람들,
그 모든 풍경 속에서 엄마와 나란히 걷던 그 시간이 그립다.
그림이 내게 속삭인 말
“살아 있다는 건, 함께 앉아 쉬는 일에도 의미가 있다.”
박수근의 《시장》은 말하는 사람보다
그저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 안에 엄마가 있고, 어릴 적의 내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있다.
조용히, 누군가의 옆에 앉아 삶을 쉬어가는 그 순간.
📌 참고 링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3667584
[그림산책] 박수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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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ews.naver.com
https://ncms.nculture.org/market/story/7815?u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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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화가’ 박수근은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작품에 담았다. 그는 특히 시장과 상인을 즐겨 그렸다. 1950-1960년대 가난했던 시절, 희망을 바라볼 수 있던 곳이 바로 물건을
ncms.ncultur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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