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그림, 그림 너머의 피카소 (10)
<자화상> 천재의 두 얼굴
그의 천재성은 찬란했고, 그림은 혁명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마냥 눈부시지만은 않았다.
그림 너머의 피카소는 천재와 괴물 사이를 오간,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추정되는,
나르시스트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간이었다.
1. 시간이 지나며 무너져간 관계들
그는 예술 앞에서는 한없이 정열적이었지만,
사랑 앞에서는 너무도 잔혹한 남자였다.
연인 올가를 시작으로, 그의 곁을 지났던 여성들 중
자살, 정신이상, 요절에 이른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여담으로 피카소는 평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여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여신(goddess)과 현관 발매트(doormat).”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자식들을 방치하며, 결국 가족들마저 고통 속에 남겼다.
그의 손자 파블리토는 락스를 마시고 스물넷의 나이에 자살했고,
그 아버지 파울로는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손녀 마리나 피카소는 14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결국 할아버지를 고발하는 회고록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를 출간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 하나하나를 완성해나가는 데 타인의 피를 필요로 했다. 나의 아버지, 오빠, 어머니, 할머니의 피와 나의 피, 그리고 한 인간을 사랑한다고 여기며 피카소를 사랑한 모든 이들의 피를. 나의 아버지는 그의 폭정의 굴레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그에게 속고 실망하고 비천해지고 망가진 채 그로 인해 죽었다. 냉혹하게도. 그의 가학 취미와 무심함의 노리개가 되었던 오빠 파블리토는 스물넷의 나이에 락스를 마시고 자살했다. 식도와 후두가 타버리고, 위가 파괴되고,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는 모습으로 피범벅 속에 누운 오빠를 발견한 건 나였다. (중략) 락스를 마심으로써 오빠는 고통을 끝장내고, 자신을 기다리는 암초들을 무력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 암초들은 나 또한 노리고 있었다. 피카소 이름을 가진 우리는 우롱당하는 희망의 소용돌이라는 덫에 걸린 사산아들이었다.
마리나 피카소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 p.13
2. 피카소라는 이름의 그늘
마리나는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에서
“나의 가족은 저 천재가 쳐놓은 덫에서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피카소는 일생 동안 엄청난 예술적 성취를 남겼지만,
그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지옥이었다.
“너는 내 작업실의 먼지만큼 하찮은 존재야.”
그가 떠나려는 연인 질로에게 했다는 이 말은,
그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사랑을 상징한다.
질로는 이에 맞서 싸웠고, “나는 결코 쓸려가지 않고, 내가 원할 때 떠날 먼지”라며 떠났다.
그는 유일하게 피카소를 거부한 여인이었다.
3. 말년의 자화상 – 무너진 얼굴
피카소의 말년 자화상을 보면,
삐뚤어진 눈, 과장된 입, 일그러진 형태가 보인다.
젊은 시절의 자화상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신감’이라면,
이 그림은 ‘무엇도 감출 수 없는 자기 고백’처럼 느껴진다.
형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남은 건 선과 색을 넘어선 감정의 잔상이다.
그리고 피카소는 그 마지막 얼굴에,
자신의 생을 고백하듯 모든 것을 담아냈다.


마무리 – 천재의 그림자, 인간의 얼굴
피카소는 세계가 가장 사랑한 화가 중 하나지만,
그의 가족은 그를 사랑하기에 너무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의 유산은 찬란하지만, 그의 인간성은 논란과 상처를 함께 남겼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위대함이 아니라,
한 인간이 가진 위선과 고통, 사랑과 자멸,
그 모든 것을 감추지 않은 ‘존재의 기록’이다.
그렇기에 피카소의 그림은 선을 넘는다.
미술의 경계를, 인간에 대한 이해의 경계를,
그리고 우리가 믿고 싶은 천재의 이미지를 넘는다.
그는 이렇게 유언했다.
“나를 위해 축배를, 내 건강을 위해 축배를 드시오.
나는 이제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소.”
Drink to me, drink to my health. You know I can't drink anymore.
그리고 그는 떠났다. 천재의 흔적을, 그리고 수많은 상처를 남긴 채.
→ 지금까지 "선을 넘는 그림, 그림 너머의 피카소" 시리즈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일은 후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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