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고요, 호퍼와 나의 밤(2) - <Morning Sun>
아침이 오고, 마음은 여전히 멈춰 있다
하루가 시작되었다.
햇살은 창문을 타고 방 안으로 스며들고,
한 여인이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시선은 창 너머의 세상이 아니라,
내면 어딘가를 향해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Morning Sun》(1952)은
아침 햇살 가득한 방 안을 배경으로,
고요하게 앉아 있는 한 여인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햇살은 따뜻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창밖을 보는 그녀, 안을 들여다보는 나
여인은 침대에 앉아, 두 다리를 모으고 있다.
햇살이 그녀의 팔과 얼굴에 닿아 있지만,
그 표정은 무표정에 가깝다.
바라보는 곳은 창문이지만,
그 시선은 멀리도, 가까이도 닿지 않는다.
그림을 바라보는 나 역시
자꾸만 그녀와 함께 방 안에 갇히는 느낌이 든다.
아침을 맞이한 몸과는 달리, 마음은 아직 깨어나지 못한 듯하다.
가볍게 풀린 어깨, 그러나 깊은 눈빛.
호퍼는 이 장면에서 ‘시작’보다는 ‘정지’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햇살 속 고요, 그리고 말 없는 질문
호퍼의 인물들은 대개 말이 없다.
그들은 침묵 속에 있고, 관계보다는 ‘단절’의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이 그림 속 여성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그녀를 부르지 않고, 그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침묵이 너무나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어제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는 걸까?’
‘오늘이라는 하루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햇살은 모든 것을 드러내지만,
이 장면 속 감정은 오히려 더 숨겨져 있다.
그런 아침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잠에서 깼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은 아침.
몸은 깨어 있지만, 마음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시간.
창밖은 밝고 환하지만, 내 안은 여전히 흐리고 무겁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도, 완전히 혼자이지도 않은
그 모호한 틈 속에, 나도 그녀처럼 앉아 있던 적이 있다.
그림 속 여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과거의 어떤 시절로 돌아간다.
멍하니 앉아 있던, 그러나 묵묵히 하루를 버텨냈던 내 모습.
햇살은 천천히 마음에도 닿는다
호퍼의 《Morning Sun》은 한 여인의 고요한 아침을 통해,
우리 모두의 내면 풍경을 비춘다.
그녀는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내 마음 어딘가에 닿는다.
우리도 매일 아침, 그녀처럼 조용히 ‘하루를 받아들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햇살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마음에도 닿는다.
지금, 우리가 멈춰 있는 그 자리에
햇살 하나쯤은 들어와 있기를.
📌 참고 링크
File:Edward Hopper - Morning Sun - c 1952 - Columbus Museum of Art.jpg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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