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눈, 고야의 빛과 그림자 (5) 죽음 앞의 민중 – 〈1808년 5월 3일, 프렌시페 피오 언덕의 학살, 1814〉
흰 셔츠의 눈부심
어두운 밤에도 흰 옷은 눈에 띈다. 숱한 어둠 속에서도 흰빛은 도망칠 수 없고, 오히려 더 강하게 불려 나온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은 바로 그 눈부심에서 시작한다.
총구 앞에 선 한 남자가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다.
흰 셔츠는 어둠 속에서 불길처럼 번쩍이고, 그의 두 손바닥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듯 펼쳐져 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인간이 죽음 앞에서 드러내는 가장 근원적인 모습이다.

마드리드의 학살
1808년 5월 2일의 봉기 다음 날, 프랑스 군은 보복을 감행했다.
반란에 가담했다고 여겨지는 민중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다 총살한 것이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은 그 처형 장면을 정면으로 그렸다.
그림 속 왼편에는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는 이들이 있고,
오른편에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병사들의 차가운 총열이 일렬로 겨누어져 있다.
중심에 선 남자는 팔을 크게 벌려 빛을 받으며 서 있다.
그의 손바닥에는 못 자국처럼 보이는 상처가 그려져 있다. 보는 이는 자연스레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떠올린다.
신앙과 죽음의 이미지
고야는 직접적으로 종교적 상징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남자의 자세와 빛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형상을 환기시킨다.
군인들의 얼굴이 가려져 있다는 점은 더욱 강렬하다.
가해자는 익명화되고, 피해자만이 얼굴을 드러낸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이름 없는 폭력에 의해 사라져 간다.
그러나 그 순간조차, 고야는 한 사람의 몸짓을 통해 저항과 존엄을 남겼다.
그 흰빛은 죽음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오늘의 나, 무력감 앞에서
나는 이 그림을 보며 일상에서 마주한 무력감을 떠올린다.
어제도 언급했지만 사회복지사로서 나는 학대와 폭력, 차별의 사건들을 본다.
때때로 해결할 힘이 없어 마음이 무너진다. 그러나 동시에 깨닫는다.
이 남자의 두 손처럼, 나의 작은 기록과 외침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고야가 이 장면을 화폭에 남겼듯, 나 역시 내 자리에서 내가 본 폭력을 잊지 않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총알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침묵이 낳는 괴물을 견제하는 길이다.
〈1808년 5월 3일〉은 우리에게 묻는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고야는 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흰 셔츠의 빛과 두 손의 펼침은 그 질문 자체가 이미 저항임을 보여준다.
나는 이 그림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나는 오늘 어떤 폭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을 것인가.”
그 질문이야말로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신앙과 직업,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놓쳐서는 안 될 다짐이 된다.
📌 참고 링크
File:El Tres de Mayo, by Francisco de Goya, from Prado in Google Earth.jpg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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