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그림, 그림 너머의 피카소(8) - 〈한국에서의 학살〉 침묵을 찢는 분노의 붓질
선을 넘는 그림, 그림 너머의 피카소 (8)
〈한국에서의 학살〉 침묵을 찢는 분노의 붓질
1951년, 피카소는 낯선 동아시아의 전쟁을 화폭에 옮겼다.
그는 한국전쟁에 대해 많은 걸 알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 혹은 한 줄의 뉴스가 그의 붓을 들게 했다.
그는 그 전쟁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입장을 오롯이 그림으로 남겼다.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
그것은 피카소가 목격하지 않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쏘아올린, ‘양심의 발언’이었다.
1. 익숙한 구도, 다른 고발
〈한국에서의 학살〉은 피카소가 존경했던 고야의
〈1808년 5월 3일〉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총을 든 병사들, 맨몸으로 공포에 질린 여성들.
죽음을 앞에 둔 인간의 나약함과 절규가 두 화폭 모두를 관통한다.
하지만 피카소의 그림에서 병사들은 무표정한 기계처럼 서 있다.
총구를 들이댄 인간의 얼굴은 삭제되고,
망설임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의 무서움’만이 남는다.
2. 이념보다 생명, 진실보다 감정
피카소는 공산당원이었고, 좌파 예술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종종 ‘공산주의의 선전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정치가 아니라 감정을 봐야 한다.
피카소는 그림 속에 이념을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렸다.
눈을 감은 아이, 두 팔을 벌려 비명을 지르는 어머니.
그의 그림 속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죽였느냐가 아니라,
누가 죽어가는가였다.
3. 그림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
〈한국에서의 학살〉은 그 어떤 입체적 구성도, 기교도 없는 그림이다.
색은 최소화됐고, 인물은 마치 부조처럼 단단하게 그려졌다.
피카소는 이 그림에서 “내가 얼마나 잘 그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분노했고, 침묵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렸다.
이것은 그림이자 고발장이었다.
그림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목소리였다.
4. 멀리 있는 전쟁, 가까운 고통
피카소는 한국 땅을 밟은 적이 없다.
그는 그저, 멀리서 들려온 비명을 그렸다.
그 고통이 사실이었는지, 왜곡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중요한 건, 피카소는 ‘사실’을 넘어서 ‘감정’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림은 팩트가 아니라 진심으로 완성되는 예술이라는 것.
그는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나는 이 편에 서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마무리 – 기억은 예술로 남는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피카소의 걸작 중 하나로 많이 회자되지는 않는다.
너무 정치적이고, 너무 불편하고, 너무 사실적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분명히 존재한다.
폭력의 역사 속에서, 무력한 생명의 편에 서 있던 한 화가의 목소리로.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전쟁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침묵하지 않았다.”
→ 선을 넘는 그림, 그림 너머의 피카소(9) 예고
→ <도라마르의 초상> 불안 속에서 피어난 사랑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