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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그림, 그림 너머의 피카소(8) - 〈한국에서의 학살〉 침묵을 찢는 분노의 붓질

은달84 2025. 5. 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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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그림, 그림 너머의 피카소 (8) 

〈한국에서의 학살〉 침묵을 찢는 분노의 붓질

 

1951년, 피카소는 낯선 동아시아의 전쟁을 화폭에 옮겼다.
그는 한국전쟁에 대해 많은 걸 알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 혹은 한 줄의 뉴스가 그의 붓을 들게 했다.

그는 그 전쟁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입장을 오롯이 그림으로 남겼다.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
그것은 피카소가 목격하지 않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쏘아올린, ‘양심의 발언’이었다.

 

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1. 익숙한 구도, 다른 고발

〈한국에서의 학살〉은 피카소가 존경했던 고야의
〈1808년 5월 3일〉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총을 든 병사들, 맨몸으로 공포에 질린 여성들.
죽음을 앞에 둔 인간의 나약함과 절규가 두 화폭 모두를 관통한다.

하지만 피카소의 그림에서 병사들은 무표정한 기계처럼 서 있다.
총구를 들이댄 인간의 얼굴은 삭제되고,
망설임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의 무서움’만이 남는다.


2. 이념보다 생명, 진실보다 감정

피카소는 공산당원이었고, 좌파 예술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종종 ‘공산주의의 선전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정치가 아니라 감정을 봐야 한다.

피카소는 그림 속에 이념을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렸다.
눈을 감은 아이, 두 팔을 벌려 비명을 지르는 어머니.
그의 그림 속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죽였느냐가 아니라,
누가 죽어가는가였다.


3. 그림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

〈한국에서의 학살〉은 그 어떤 입체적 구성도, 기교도 없는 그림이다.
색은 최소화됐고, 인물은 마치 부조처럼 단단하게 그려졌다.
피카소는 이 그림에서 “내가 얼마나 잘 그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분노했고, 침묵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렸다.
이것은 그림이자 고발장이었다.
그림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목소리였다.


4. 멀리 있는 전쟁, 가까운 고통

피카소는 한국 땅을 밟은 적이 없다.
그는 그저, 멀리서 들려온 비명을 그렸다.
그 고통이 사실이었는지, 왜곡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중요한 건, 피카소는 ‘사실’을 넘어서 ‘감정’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림은 팩트가 아니라 진심으로 완성되는 예술이라는 것.
그는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나는 이 편에 서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마무리 – 기억은 예술로 남는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피카소의 걸작 중 하나로 많이 회자되지는 않는다.
너무 정치적이고, 너무 불편하고, 너무 사실적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분명히 존재한다.
폭력의 역사 속에서, 무력한 생명의 편에 서 있던 한 화가의 목소리로.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전쟁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침묵하지 않았다.”

 


→ 선을 넘는 그림, 그림 너머의 피카소(9) 예고   

→ <도라마르의 초상> 불안 속에서 피어난 사랑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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