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와 감정의 기록(5) - 〈병든 아이〉 멈춰버린 시간, 잃어버린 사람
〈병든 아이〉 – 멈춰버린 시간, 잃어버린 사람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아무리 준비해도, 떠나는 순간은 마음속 어딘가를 멈춰 세운다.
에드바르 뭉크에게 그 순간은
누나 "소피에(Sophie)"를 잃었던 때였다.
결핵으로 점점 쇠약해져 가던 소피에를 지켜보며,
뭉크는 어린 나이에 상실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그 슬픔은 그의 삶 전체를 지배했고,
뭉크는 그 감정을 평생 동안 화폭과 판화에 담아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병든 아이〉 석판화 버전(The Sick Child, Lithograph) 이다.
1. 반복되는 슬픔, 다시 그려낸 기억
뭉크는 이 작품을 단 한 번으로 끝내지 않았다.
처음 유화로 그린 이후,
그는 무려 여섯 번 이상 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반복했다.
이 석판화 버전은 그가 원작의 감정을 더 간결하고 상징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소녀는 침대가 아닌 어딘가를 응시하며 조용히 시간의 끝자락에 서 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창백한 얼굴,
그리고 주변을 감싸는 어두운 선들.
이 그림은 구체적인 장면이 아니라,
뭉크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슬픔 그 자체다.
2. 선으로 남은 이별의 순간
석판화 특유의 거칠고 반복된 선들은
마치 지워지지 않는 기억처럼 화면을 채운다.
뭉크는 누나의 죽음을 잊지 못했고,
그 기억을 가슴에 품은 채
계속해서 같은 감정을 다른 형식으로 기록했다.
〈병든 아이〉 석판화는 그래서 더 강렬하다.
더 이상 설명도, 배경도 필요 없다.
소녀의 옆모습만으로도
그 이별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을 보며 생각했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렇게 형태만 남은 이별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3. 상실은 잊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
뭉크에게 상실은 결코 과거형이 아니었다.
그는 평생을 두고 소피에의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예술을 선택했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슬픔이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 테니까.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질 뿐,
그 빈자리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때때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뭉크의 〈병든 아이〉는 그 조용한 순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작품이다.
4. 나의 멈춰버린 시간
나 역시 멈춰버린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누군가를 잃었던 그날의 공기,
그때 들었던 말,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라본 얼굴.
그 기억은 잊힌 줄 알다가도 어느 날 불쑥 떠오른다.
〈병든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내 안에 남아 있는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뭉크처럼,
그 슬픔을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고
조용히 곁에 두기로 했다.
마무리 – 이별은 끝이 아니라, 삶 속에 머문다
뭉크의 〈병든 아이〉 석판화는
상실을 웅변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잊히지 않는 감정의 흔적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누군가를 잃고,
그 빈자리를 안고 살아간다.
상실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 하나의 색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슬픔을 껴안은 채,
우리는 다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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