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7), 창문을 통해 본 니스의 정원
색은 해방이다 - 마티스의 색채 여행 (7), 창문을 통해 본 니스의 정원
나는 지금 커다란 통창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시원하게 열린 창 너머로
붉게 물든 노을이 신도시의 빌딩 사이로 번져 나가고,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과
저마다의 퇴근길이 창 아래로 펼쳐진다.
이 풍경이 익숙해졌지만,
어느 순간 문득, 창문조차 열 수 없던 시절의 내가 떠오를 때가 있다.
반지하 원룸에서 살던 시절,
작고 뿌연 창이 벽 한 칸에 붙어 있었다.
열어도 환기만 될 뿐,
그 어디로도 시선이 가지 않았다.
나는 그때 늘 ‘창문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
밖을 바라보고 싶었고, 햇살이 드는 벽을 원했고,
세상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마티스의 〈창문을 통해 본 니스의 정원(Open Window, Collioure), 1905〉을 보고,
이 그림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바라보는 감정’을 그렸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창은 단순한 틀이 아니다
그림은 말 그대로 열려 있다.
붉은 프레임의 창틀 안으로
하늘과 바다, 꽃과 식물, 그리고 요트들이 펼쳐진다.
색채는 전혀 사실적이지 않지만,
그 색이 전달하는 감정은 더없이 생생하다.
분홍빛 바다는 따뜻하고, 초록 덩굴은 살아 숨 쉬며,
푸른 벽은 조용한 낮잠처럼 느껴진다.
이 그림을 그린 1905년,
마티스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항구도시 콜리우르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앙드레 드랭과 함께
빛과 색, 그리고 자유에 대해 고민했고,
그 결실로 탄생한 이 그림은
‘야수파’라는 새로운 예술의 물꼬를 트게 된다.
야수적 색채가 연 창문
당시 미술계는 충격을 받았다.
붓질은 거칠고, 색은 선을 넘었으며, 형태는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마티스가 의도한 것이었다.
그는 ‘색’이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는 이 그림을 통해 빛을 ‘색의 감정’으로 번역해냈다.
〈Open Window〉는 단순히 열려 있는 창이 아니다.
세상과 마음, 그 둘이 만나는 ‘투명한 경계’다.
그림 속 공간은 외부이면서 내부이고,
빛이 들어오는 동시에 마음이 바깥으로 나간다.
나의 창문, 마티스의 창문
지금 나는 12층의 집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창가에 선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볼 때면,
그저 ‘예쁘다’는 생각보다 묘한 감정이 먼저 밀려온다.
과거의 내가 안쓰럽고, 지금의 내가 감사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저릿해진다.
마티스의 이 그림을 보며
나는 그런 감정을 더 이상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됐다.
그도 자신의 창을 통해 어딘가로 가고 싶었던 마음,
세상과 연결되고 싶었던 간절함을
이토록 따뜻하고 강렬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그림이 내게 속삭이는 말
“너의 창문은 이제 열려 있다.
그 너머의 풍경이 아름다워질수록,
과거의 너도 빛나게 될 거야.”
그림 속 붉은 창틀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의 테두리 같고,
그 안의 분홍빛 세상은 내가 오늘 바라본 노을 같았다.
창문 하나가 이토록 많은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걸,
마티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 참고 링크
https://www.nga.gov/artworks/106384-open-window-collioure?utm
Open Window, Collioure by Henri Matisse
A painting may provide a “window” into a different world. Here, the painting is itself a window, and it reveals a world dizzy with color and movement.
www.nga.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