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욕망의 선, 실레와 나의 거울 (6) - <발리 네우질 초상> 떠난 사랑은 어디에 남는가
불안과 욕망의 선, 실레와 나의 거울 (6) - <발리 네우질 초상> 떠난 사랑은 어디에 남는가
남아 있는 얼굴
발리(Vali, Wally) 네우질.
에곤 실레의 연인이었고, 그의 가장 많은 그림에 등장했던 모델이자 동반자였다.
그러나 이 그림의 발리는 더 이상 연인의 얼굴만은 아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우리 쪽으로도, 실레 쪽으로도 아닌 어딘가 어긋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은 담담함과 체념, 슬픔과 묵직한 애착이 동시에 겹쳐진다.
그 눈빛에서 나는 이런 말을 들은 것만 같다.
나는 알고 있어. 이 사랑이 끝날 것을.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은, 기억되고 싶다.
실레와 발리, 이별의 기록
이 초상이 그려지던 해, 실레는 에디트 하르름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발리와의 관계는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발리와 실레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그의 모델이자 친구, 사랑이자 삶의 동반자였다.
이별을 알면서도, 실레는 발리를 그리고 또 그렸다.
그 중에서도 이 초상은 유독 말 없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화려한 배경도 없고, 상징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의 얼굴.
그러나 그 얼굴 안에는 관계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그걸 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끝내 붙잡지 못한 마음.
그러나 그것을 그려서라도 남기고 싶었던 실레의 마음.
나의 거울, 잔상으로 남은 마음
나는 이 그림을 보며 내가 떠나보낸 사랑들의 잔상들을 떠올렸다.
관계는 끝나도, 감정은 남는다.
그것은 어쩌면 더 오래, 더 깊게 남는다.
떠나고 나서야 더 또렷해지는 얼굴들.
내 안에도 그런 얼굴이 있다.
그의 눈빛과 말투, 그때의 온도까지도 종종 불쑥 떠오른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처럼 그것을 아프게 붙잡지 않는다.
실레의 붓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한다.
있는 그대로 남아 있게.
그것이 떠난 사랑을 품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실레의 붓이 내게 속삭인 말
나는 오늘도 스치는 얼굴을 떠올린다.
그 안에 슬픔도 있고, 따뜻함도 있고, 아픔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든 시간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떠난 사랑도 나의 일부다.
나는 오늘도 그것과 함께 살아간다.
📌 작품 감상 링크
Portrait of Wally Neuzil (1912) – Wikimedia Commons
File:Egon Schiele - Portrait of Wally Neuzil - Google Art Project.jpg - Wikimedia Commons
From Wikimedia Commons, the free media repository
commons.wikimedia.org
떠난 사랑은 어디에 남는가.
아마도 우리 마음속 한 귀퉁이에서,
언제든 다시 문을 열면 만날 수 있는 곳에.
그리고 그 문을 열어볼 용기가 생기는 날까지,
그 얼굴은 조용히, 묵묵히 거기에 있을 것이다.
→ 불안과 욕망의 선, 실레와 나의 거울 (7) 예고
→ <주홍빛 드레스를 입은 무릎을 꿇은 여인> 무릎을 꿇는다는 것의 의미